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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자전거 천국 (교통사고, 인프라 구축, 안전 제도)

by 다자매아빠 2026. 3. 19.



여러분은 혹시 출근길에 자전거를 타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15년 전 서울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거리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요? 따릉이 덕분에 남녀노소 누구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변화를 보면서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세계 최고의 자전거 선진국이라 불리는 네덜란드는 어떻게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걸까요?


자전거보다 자동차가 많았던 시절, 무슨 일이 있었을까?


놀랍게도 네덜란드가 처음부터 자전거 천국이었던 건 아닙니다. 1930년대에는 자전거 보급률이 50%에 달할 정도로 높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모든 걸 바꿔놓았습니다. 나치 독일이 연료 부족으로 네덜란드 자전거의 절반을 빼앗아 갔고, 전쟁 후에는 전국 도로의 60%가 파괴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전후 복구 과정에서 마셜 플랜(Marshall Plan)을 통해 미국산 자동차가 대량으로 유입되었습니다. 여기서 마셜 플랜이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유럽 경제 재건을 위해 제공한 대규모 원조 프로그램을 의미합니다. 그 결과 1950년 14만 대였던 자동차가 1970년에는 340만 대로 폭증했고, 자전거 이용률은 매년 6%씩 감소했습니다. 좁은 도로는 자동차로 가득 찼고, 네덜란드는 전형적인 자동차 중심 사회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정말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1971년 한 해에만 교통사고로 3,200명이 사망했는데, 그중 500여 명이 14세 미만 아동이었습니다. 이 수치가 얼마나 심각한지 체감이 되시나요? 네덜란드 국민들은 이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시민들이 직접 나선 '아동 살해 중지' 운동


1960년대 네덜란드 정부는 교통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의 교통 전문가 데이비드 유캔을 초청했습니다. 그가 제안한 '요키네 계획'은 저소득층 주거지역을 철거하고 도시를 관통하는 순환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네덜란드 시민들은 전통적인 도시의 모습을 자동차 도로 때문에 바꾸려는 이 계획에 강하게 반발했고, 결국 계획은 보류되었습니다.

더 큰 변화의 계기는 언론인 라원 오프가 시작한 '스톱 테킨 더 모르트(Stop de Kindermoord)' 캠페인이었습니다. 이 말은 네덜란드어로 '아동 살해 중지'를 의미합니다. 교통사고로 자녀를 잃은 부모들과 사회 운동가들이 이 캠페인에 동참하면서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알게 되었을 때 정말 놀랐습니다. 우리나라도 교통사고율이 높은 편인데, 시민들이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선 적이 있었나 싶더라고요. 네덜란드 사람들의 이런 움직임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전거 천국도 없었을 겁니다.


오일쇼크가 가져온 예상 밖의 결과


'아동 살해 중지' 캠페인이 한창이던 1973년, 1차 오일쇼크가 발생했습니다. 오일쇼크(Oil Shock)란 석유 수출국들의 생산량 조절로 인해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을 주는 현상을 말합니다. 당시 네덜란드의 기름 값은 하루아침에 4배로 뛰었고, 덴 총리는 일요일 자동차 운행을 금지하는 강력한 에너지 절약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 정책의 부작용이었습니다. 상가 주인들은 매출 감소를 걱정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차 없이 거리로 나온 시민들이 오히려 상점에서 더 오래 머물면서 매출이 증가한 겁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정치인들은 자전거의 경제적 이점을 직접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따릉이를 타기 시작한 것도 비슷한 이유였습니다. 처음에는 택시비 절약이 목적이었는데, 막상 타보니 운동도 되고 주변 가게들도 더 자주 들르게 되더라고요. 이동 수단이 바뀌니 소비 패턴까지 달라지는 걸 직접 체험했습니다.

이 시기를 계기로 네덜란드는 도시 설계 패러다임을 자동차 중심에서 자전거 친화적 방향으로 전환하기 시작했습니다. 상점과 학교 등 모든 시설을 자전거로 이동 가능하도록 도시를 재설계했고, '워너프(Woonerf)' 지역이 탄생했습니다. 워너프란 자동차와 보행자, 자전거가 동등하게 도로를 공유하는 주거 구역을 의미하며, 자동차 속도를 보행 속도 수준으로 제한하는 것이 특징입니다([출처: 네덜란드 교통안전국]


인프라만으로는 부족했다, 더 강력한 제도가 필요했던 이유


단순히 자전거 도로를 깔았다고 해서 사람들이 바로 자전거를 탄 건 아니었습니다. 1990년대 네덜란드 정부는 더 강력한 자동차 이용 억제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시내 주행 제한 속도를 낮추고 방지턱 설치
- 자전거 도로가 직선 코스를 선점하여 자전거가 자동차보다 빠른 구간 확대
- 자동차 통행 가능 지역 축소 및 시내 주차 비용 대폭 인상
- 주차 수익금을 자전거 인프라 구축에 재투입

이런 정책들이 실행되면서 운전자와 정부 간 물리적 충돌까지 발생했습니다. 모두가 이 변화를 환영한 건 아니었다는 뜻이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자전거 이용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시내에 자전거로 인한 교통체증이 생길 정도가 되었습니다.

저는 서울에서도 비슷한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자전거 전용 도로가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하면서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따릉이 시스템이 도입되고 나서는 이용자가 확 늘었습니다. 인프라가 깔리니 자연스럽게 사용자가 증가하는 걸 직접 목격한 셈입니다.

하지만 네덜란드와 우리나라의 결정적 차이는 안전 제도에 있습니다. 네덜란드는 자전거의 권리를 보호한 만큼 책임도 강화했습니다. 교통 규칙 위반 시 벌금을 부과하고, 무단 주차도 철저히 단속합니다. 또한 헬멧을 쓰지 않는 모습이 흔한데, 이는 보호 장구보다 안전한 교통 시스템 구축이 더 중요함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출처: 유럽교통안전위원회](https://etsc.eu)).

반면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픽시 자전거는 브레이크도 없이 출시되어 자전거 사고율을 높이는 주된 원인이 되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정말 이해가 안 갑니다. 어떻게 그런 자전거를 아무런 제재 없이 판매하도록 놔뒀는지 말이죠. 인프라는 잘 구축되고 있지만, 안전 제도는 여전히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네덜란드가 1885년 처음 자전거 도로를 만든 이후 겪었던 긴 갈등과 발전 과정을 보면, 발전된 문화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현재 네덜란드는 인구 1,750만 명에 자전거 2,300만 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직장인의 절반이 자전거로 통근하고 학생의 75%가 자전거로 통학합니다. 이 모든 게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도 자전거 이용자가 많이 늘었습니다. 저처럼 따릉이를 등록하고 웬만한 거리는 자전거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죠. 하지만 진정한 자전거 선진국이 되려면 단순히 도로만 깔 게 아니라, 안전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가 함께 마련되어야 합니다. 브레이크 없는 자전거를 규제하고, 교통 규칙 위반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며, 자전거 이용자의 책임 의식도 높여야 합니다. 네덜란드가 수십 년에 걸쳐 만들어온 자전거 문화를 우리도 차근차근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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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youtu.be/H6CgRxdkYGA?si=p-JCsPtAJnFigcp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