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간 직장을 다니면서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 "이 4년이 정말 필요했을까?"였습니다. 독일에서는 전체 학생의 40%만 대학에 진학하고, 나머지는 도제교육(Dual Education System)을 통해 현장 전문가로 성장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도제교육이란 기업 현장에서 실무를 배우며 동시에 이론 교육을 받는 시스템을 말합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도, 대학에서 배운 광범위한 이론보다 현장에서 쌓은 1년의 경험이 훨씬 값졌던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왜 똑똑한 학생들이 대학 대신 도제교육을 선택할까
독일에서는 인문계 고등학교인 김나지움(Gymnasium) 졸업생의 77%가 대학에 진학할 자격이 있지만, 상당수가 도제교육을 먼저 선택합니다. 독일 기독교사회민주당의 교육 전문가 알베르트 루 플레이트는 오히려 너무 많은 학생이 대학으로 몰리는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출처: 독일연방통계청](https://www.destatis.de)). 제조업 강국인 독일에서 현장 노하우를 가진 엔지니어가 부족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바로는, 대학 2학년까지는 제 성적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3학년이 되자 뒤처졌던 친구들이 갑자기 앞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과 저의 차이는 단순한 암기력이나 계산 속도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전공과 직업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문제를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사고방식이었습니다.
독일의 도제교육 시스템은 16세부터 시작되며, 학생들은 기업 입사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실제로 한 학생이 제약회사 프로가디스에 지원했다가 서류 탈락하고, 하이델베르크 암 연구소 면접에서 3시간 30분 동안 검증받는 과정을 겪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얻는 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닙니다.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 대한 진지한 태도와, 실패를 통해 배우는 학습 패턴을 체득하게 됩니다.
대학교육의 광범위함과 현장 실무의 간극
제가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전공 관련 직장에 다니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교육과목이 너무 광범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기초과목은 특성화고에서 이미 배우는 내용을 반복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석사 과정이나 연구직이 아닌 이상, 실무에서 필요한 지식의 범위는 대학 커리큘럼보다 훨씬 좁고 깊습니다.
독일 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인재는 도제교육과 대학교육을 모두 이수한 학생입니다. 이런 인재는 생산 현장과 경영진 사이의 간극을 줄이고, 실무 감각과 이론적 배경을 동시에 갖추게 됩니다. 실제로 독일의 조 단위 매출을 올리는 히든 챔피언 기업들, 예를 들어 용접 로봇 회사 클로스(CLOOS)나 엘리베이터 회사 쉰들러(Schindler)에서는 도제교육만 이수하고 자체 교육을 통해 성장한 이사급 임원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대학 3, 4학년 때 뒤늦게 이런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다른 학생들은 오랜 교육을 통해 입체적 사고를 이미 갖추고 있었고, 학문의 예술적 영역으로 들어가자 저는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만약 제가 고등학교 때 희망 전공을 정하고, 대학교육보다는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교육과정을 먼저 밟았다면 어땠을까요? 시간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훨씬 효율적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 교육 현실에서 적용 가능한 대안은
독일 교육 시스템은 스위스 교육자 페스탈로치(Johann Heinrich Pestalozzi)의 철학을 기반으로 합니다. 여기서 페스탈로치 철학이란 모든 학생이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있으므로 획일적이지 않은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는 사고를 말합니다. 실제로 독일의 교육 시스템은 너무 복잡해서 한국의 교육 전문가들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정도입니다([출처: 한국교육개발원](https://www.kedi.re.kr)).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대학 가지 마라"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저 역시 만약 한국에서 가정을 꾸렸다면, 딸에게 대학 진학을 포기하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대학 학위가 가지는 상징적 의미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당장 적용해볼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요? 독일처럼 완전히 시스템을 바꿀 수는 없지만, 개인 차원에서 몇 가지 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고등학교 때부터 희망 전공 분야의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인턴십이나 멘토링 프로그램 참여
- 대학 진학 전 1~2년간 관련 분야에서 아르바이트나 계약직으로 일하며 현장 감각 익히기
- 특성화고와 4년제 대학을 연계하는 듀얼 트랙 프로그램 확대 요구
저는 오디오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일하면서, 현장에서 직접 장비를 만지고 음향을 조정해본 경험이 없는 신입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여러 번 봤습니다. 반대로 대학 학위는 없지만 방송국이나 공연장에서 몇 년 일한 사람들은 이론이 부족해도 현장 대처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
독일의 사립 레알 슐레(Realschule, 도제 학교 진학 전 실과 학교)에서는 중견기업 대표들의 자녀가 인문계 대신 도제 교육 트랙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족 기업의 차세대 오너들이 현장 경험과 학문적 지식을 모두 갖춘 경영인이 되기 위한 커리어 패스입니다. 이는 "무엇을 배우느냐"보다 "그 배움을 어떤 태도로 대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대학을 바로 간 게 인생 최대 실수"라는 고백이 과장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30년 독일 생활을 한 저자의 말처럼, 전공과 직업을 대하는 태도를 완성하지 못한 채 공부했던 시간은 정말 아까운 시간입니다. 제 경험상으로도, 현장 감각 없이 쌓은 이론은 기술 변화가 빠른 현대 사회에서 금방 도태됩니다. 지금이라도 우리 사회가 다양한 진로 선택지를 인정하고, 대학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한 사람들을 동등하게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개인에게도, 사회 전체의 경쟁력에도 더 나은 방향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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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youtu.be/kxP9_IrPpD4?si=04xrAOZkAmCYQrSe